고난주간 특새 2일차 빌 2:5-8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2026.04.01 13:33
예수인교회
고난주간 특새 2일차 빌 2:5-8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찬 461/ 통 519 십자가를 질 수 있나
5절에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렇게도 해석합니다.“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입니다.” ‘마음’을 ‘태도’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어제 우리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복음은 믿는데 머리로만 믿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사도바울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을 삶에서 살아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만 잘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왜요?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바라시니까요. 사도바울은 오늘 5절에서 그리스도의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우리는 묵상해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디까지 순종하셨는지, 어떻게 순종하셨는지를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존재 방식을 바꾸시면서까지 순종하셨습니다.(6절)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나귀 새끼에 오르셨을까요? 도대체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을까요? 여러분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 스스로 어린양이 되어 제물이 되는 것,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장소로 가는 것,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수치를 당하면서까지 순종하려고 할 때 절대 높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6절에 예수님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존재방식을 완전히 바꾸시어 인간의 자리, 가장 낮은 죄인의 모습으로 내려가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자리로 나아가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 삶의 존재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그 자리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 잘해주고, 못하는 사람 처벌하고, 복수하고, 포기해버리면 가장 편합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을 때 무엇이 남나요?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내 본성대로 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존재 방식이 바뀔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싸우고 화내면 나는 좋지만 복음이 전해질까요?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나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납니까?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은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존재 방식이 달라져야만 가능합니다. 지금 내 위치에서 누리면서 하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보여주신 존재 방식을 바꾸신 태도를 우리도 결단하여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순종하셨습니다.(8절)
우리는 어디까지 순종할 수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데 나오셔서 “너는 어디까지 순종할 수 있겠니?”라고 물으신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나요? 지금 못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한계점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은 하는데 어디까지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신 말씀이 오늘 8절의 말씀입니다.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데까지 순종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기에 순종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데까지 순종하는 것 말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자리까지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체험하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30밖에 순종하지 못할까요? 내가 30만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 요구하면 우리는 섭섭하고 서운하고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내가 100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30만큼은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내가 원하는 데까지만 순종합니까? 내가 받은 은혜의 크기가 거기까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디까지 순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까지 순종하기를 바라실까요? 내가 원하는 데까지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순종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순합니다. 우리도 그렇게까지 사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를요? 하나님을요,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원수까지요. 신앙은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데까지만 가는 신앙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가는 신앙입니다. 내가 원하는 데까지만 가는, 내 본성대로 하면 열매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거기서 머물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해볼 수 있는 만큼까지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 그곳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그것까지,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라면 기꺼이 순종해보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붙잡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상황 속에서 기존에 하던 기도대로 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오늘 이후부터는 예수님이 하셨던 그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모든 기도를 하시고 난 후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그리고 일어나는 응답,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인도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기도: 예수님처럼 나의 존재방식을 바꾸기까지 순종하게 하소서, 내 본성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선하심을 드러내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까지 순종하게 하소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중보기도(수:다음세대/젊은지도자): 우리 교회 다음세대가 깨어 있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관이 세워지게 하소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게 하소서, 헌신된 교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