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 14 히 7:1-1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예수
2026.02.27 10:57
예수인교회
믿음의 사람들 14 히 7:1-1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예수 찬 91/통 9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히브리서 7장이 말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과 대제사장은 연결이 안 되는 그림입니다.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의 정서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파 개념’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이고, 제사장, 대제사장은 레위지파만 합니다. 레위 지파 가운데도 모세의 형인 아론 계열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유대인들, 히브리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됩니다. 사도바울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대제사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요? 베냐민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레위지파만이 대제사장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지파인데 왜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까?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입니다.오늘 본문은 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지, 멜기세덱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1절)
1절에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멜기세덱이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왕이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아론의 대제사장을 시작하기 전에는 왕이 대제사장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창세기 14장 17-20절까지에서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멜기세덱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하며, 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하다고 말했고,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을 때 반복을 사용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해줍니다. 그러면서 7절에 “축복은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멜기세덱이라는 존재는 아브라함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영원한 제사장입니다.(3절)
오늘 본문 3절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멜기세덱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를 하더니 3절에 그 멜기세덱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멜기세덱과 같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해줍니다. 여기에서 떡과 포도주하면 누가 딱 떠오르시죠? 바로 예수님이시죠. 성찬식이 떠오릅니다. 성찬식은 누가 처음 제정한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이 떡은 내 살이다, 이 포도주는 내 피다.”라고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제정하신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 멜기세덱입니다. 리고 오늘 4절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칩니다. 이때부터 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개념이 생겼습니다. 십분의 일은 장자와 같아서 내 전부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제물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사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만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렸고,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에 당연히 예수님은 아론의 대제사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고 귀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멜기세덱은 먼저 정의 왕이고, 그 다음 평화의 왕입니다. (2절)
이제는 우리가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멜기세덱이 첫째로, 먼저는 ‘정의의 왕’이고 그 다음으로는 ‘평화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두 가지를 얻게 됩니다. 먼저 우리에게는 없는 의를 얻게 됩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한 불의한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의로운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둘째는 평화, 평강을 얻게 됩니다. 왜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개가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불의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우리가 평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성공으로, 물질로 평화,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편안함은 돈 주고 살 수 있겠죠. 그러나 평안, 평강은 누릴 수 없습니다. 왜요? 평강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지파상으로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레위지파의 자손, 아론의 계열의 대제사장이 아닌,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던,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비교해도 소중하고, 위대하고, 높으신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의 왕이시고, 평화의 왕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모시고, 그분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며 살 때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고, 어떤 상황과 문제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상황과 어려움을 뛰어넘는 진정한 왕이자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다시 붙잡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며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기도: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넘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대제사장이시고 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붙잡고 살게 하소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결단하고 순종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중보기도(금:선교지/모든예배/교회행사들): 목장, 새벽, 주일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사순절 기간동안 육체의 욕망, 욕심을 내려놓고 절제하게 하소서, 15개 선교지에 필요를 채워주시고 선교사님들에게 건강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