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 9 히 4:14-16 담대하게 예수님게 나아갑니다.

2026.02.10 13:4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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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 9 히 4:14-16 담대하게 예수님게 나아갑니다. 찬 309/통 409 목마른 내 영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가 언제일까요? 나는 하나님께 충분히 하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이죠. 적어도 내 기도는 들어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입니다. 또 내가 복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요. 그럴 때 신앙생활이 참 힘이 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운하고, 이게 하나님 길이 맞나 싶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집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나님은 자신들을 내버려두시고 모른척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니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그들을 향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4장 14-16절을 통해서 “그렇지 않아, 예수를 붙잡아야해~ 다른 것은 답이 아니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붙잡아야 할 이유가 있어.”라고 하면서 오늘의 본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왜 예수님을 붙잡아야 하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14절)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1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대신 죄를 해결해 주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대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대표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특별한 위치에서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끊어진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죄가 들어오고 나서 부터입니다. 왜요?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순간 인간의 고통과 비참함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회복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만이 우리의 아픔을 모두 아시기 때문입니다.(15절)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낙심될 때 예수님께 나아와야하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진정한 위로와 힘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 생각해보실 것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견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당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당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할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것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 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어려움과 비참함, 고통, 연약함을 충분히 동정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 외에는 우리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안과 위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붙잡으셔서 온전한 평안과 위로를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최고의 때에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16절)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보다는 일꾼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노예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그 삶을 누리지 못하고 노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처럼요. 자녀와 일꾼의 모습은 너무 차이가 큽니다. 칭찬은 일꾼이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왜요? 열심히 하면 되거든요. 성과만 내면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죠. 일꾼은 보상을 받지만 자식은 기업을 받는 것입니다. 자식은 잘못을 저질러도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왜요? 자녀삼아 주셨으니까요. 사장님께는 함부로 가서 말할 수 없지만 아버지니까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녀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서 최선으로 다해서 도와주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데, 할 수 있는데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엄청 좋은 집이 있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자는 사람이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관계를 회복하면 되는데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해서 혼자 광야를 40년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요. 성경은 너무 단순하게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복잡하죠? 우리의 믿음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삶이 너무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으신가요? 예수님으로 인한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담대하게 예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십시오. 뻔뻔하게요. 당당하게요. 자녀처럼요.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누리실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기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붙잡으며 신앙을 지키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욕심과 두 마음을 버리고 ‘거룩한 단순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소서.

요일기도(화:목장/환우/VIP/가정복음화): 모든 목장에 성령의 능력과 회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목자와 예비목자에게 축복하소서, 병든자들을 치유케하시고, 가정마다 믿지 않는 가족이 복음을 듣고 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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