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51 요14:15-24  끝까지 사랑하려면 3

2026.01.02 08:1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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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14:15-24  끝까지 사랑하려면 3. 찬191/통427 내일 매일 기쁘게 

요한복음 14장은 다락방 강론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중요한 당부의 말씀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말에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근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걸 아시는 예수님이 놀라운 말씀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보헤사 성령님을 보내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로 이것은 옆에서 돕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도와줄까요? 네 15절에서 말했던 “보이지 않는 주님을 끝까지 믿고 말씀을 지키도록 돕는 자”란 뜻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시다는 걸 믿습니까?  지난 2천년동안 예수님이 이땅에 없는데도 계속해서 말씀이 전파되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음성을 듣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일까요? 오늘 예수님을 통해  3가지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보혜사는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16-17

파라클레토스란 ‘변호인”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뭔가 잘못해서 법정에 세월질때 법정 분위기는 매우 살벌할것입니다. 모두 매의 눈으로 나를 살피겠죠. 이것이 바로 사탄의 참소입니다. 사탄은 날마다 우리의 죄를 검사처럼 지적해 냅니다. 이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이 세상에 살 때는 고통과 저주 가운데 있다가, 죽어서는 불과 유황이 꺼지지 않는 불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심판 아래 놓이게 될거라고 겁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든 분들께 오늘 죽으면 천국가시죠? 물을때 뭐라고 말한다고 했죠? 가봐야 할죠… 대부분은 “내가 지은죄가 많아서”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행위나 공로로 천국에 가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것입니다. 마귀의 참소에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변호해줄 변호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성령님인것입니다. 마귀의 법정에 선 우리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하여 씻음 받았으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자녀임을 나 대신에 성령님이 당당하게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엡1:13 성령의 인치심’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13-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을 쳐준답니다. 인쳐주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을 확실히 도장’ 찍어 주신다는 말 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뭔가를 구입합니다. 가령 집, 자동차 물건 등을 거래를 할 때 계약서를 씁니다. 이 물건을 값을 치르고 내거라는 걸 증명하는게 계약서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인’이 들어갑니다. 미국에서는 도장 대신에 사인으로 대신합니다. 이 사인의 계약서가 있으면 누가 뭐라해도 이 물건은 내거라는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마귀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서 참소할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 치심’ 즉 계약서와 도장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탄도 우리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령이 우리의 ‘보혜사’(파타클레이토스)가 되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변호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죄악된 세상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떳떳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보혜사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18-20

법정에서 우리를 물리적으로 증명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를 심리적으로 홀로 외롭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18절에 이 말씀을 하십니다. 요 14: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시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떠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딴 섬에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인생 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받은 여러 축복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을 주셨다는 것과 두번째로 바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성령님의 위로가 강력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한 진리 안에서 도와주시기에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가령 살이 많이 쪘는데 괜찮아 바람불면 넘어질까봐 걱정되, 못생긴 사람에게 야 너가 얼마나 예쁜데 라고 말하면 위로가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거짓말이란 생각에 또 불안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위로는 진리안에서의 위로라고 말합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한 진리의 약속으로 증명하시고 위로하신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이죠 그래서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여러분, 우리는 태평양 한 가운데 외롭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사탄이 우리의 실수나 어려움을 정죄할 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친히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도와주신다는 걸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보혜사는 우리를 말씀에 순종케 하십니다. 21-24.

 먼저 처음 15절 말씀을 볼까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예수님도 안계신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거랍니다. 쉽지 않죠. 시험감독관이 없는데 시험볼때 컨닝안할 사람있습니까? 근데 예수님이 안보여도 지킬 수 있을 거랍니다. 이유가 뭐죠. 사랑하면,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말을 다시 합니다. 23절보세요 “요 14: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비록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믿어지고 그 음성으로 위로를 얻으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게 만드냐?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수있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위로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아무리 좋은 말씀도 안들립니다. 근데 관계가 좋으면 시끄러운 잡음도 잘 들립니다.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놀라운 위로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보혜사’가 되십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치시고, 우리의 지친 삶을 위로하시고, 우리를 세상 모진 풍파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성령 충만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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