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49 요13:31-38  끝까지 사랑하려면2

2025.12.30 07:0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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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49 요13:31-38  끝까지 사랑하려면2  찬563/411   예수사랑하심은

요13장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마지막 밤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밤에 사랑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주시며 끝까지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 이걸 가르치실까요? 우리의 사랑은 항상 끝까지 가는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도 자식관계도 친구관계속에도 심지어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도 처음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의 시간에 여러장면을 통해 예수님이 그들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끝까지 사랑하려면 “역설적 시각을 갖으라” 31-32

(21-30이전말씀 요약) 지난주 금요일 예수님이 성만찬 이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세족식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오늘은 세족식 이후에 예수님은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우리중에 팔자가 있다. 제자들은 놀라서 묻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빵을 찍어 주는 자가 그 사람이다.” 말씀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가롯유다는 곧바로 예수님을 팔기위해 밤에 나갑니다. 오늘은 그 유다가 나간후부터 시작됩니다. 이때 예수님은 31절에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밤의 자식인 유다가 나갔을 때, 주님은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말은 유다가 자신을 팔러 나간일이 자기에서 영광이 됬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두가지 역설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둠을 영광으로 본것입니다. 지금부터 어두운 일이 시작될텐데 예수님은 이것을 영광의 빛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왜그럴까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 빛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노이즈 마케팅”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무명의 연예인이 말한마디를 잘못해서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온나라 사람들이 알게 된거죠. 그런데 이 연예인은 기뻐합니다. 왜냐면 연예인은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데 돈한푼 안들이지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가롯유다가 도와주는 격이 됬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둠의 고난을 통해 우리도 영광의 성숙을 한다” 역설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십자가를 영광으로 본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을 성공! 업적!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낮아짐과 죽음, 버리받음과 고난의 십자가를 영광받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령 에디슨은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봤습니다. 그러니 실패할때마다 성공에 가까이 간다고 생각한것입니다. 바울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고난당함이 유익이다.” 고난을 당할때마다 이게 유익이라는 역설적 생각이 고난을 즐기게 만든것입니다. 이런 역설적 시각을 가진 사람의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이 영광의 시각으로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하려면 “새로운 사랑을 하라” 33-35

3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자들아’ Τεκνία(테크니온)는 영어로 a little child로 번역됩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어린이를 말합니다. 아마도 10대 중반이 아이들을 뜻하거나 독립하지 못한 상태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 또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무지한 존재입니다. (요일 2:1, 2:12, 2:28, 3:7, 4:4, 5:21) 

즉 제자들의 상태를 어린아이로 본것입니다. 여러분 이런시각이 필요합니다. 때론 배우자를 자녀를 친구를 너무 높게 평가해서 내가 의지할 대상으로 착각할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로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이해가 됩니다. 어린이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주 싸웁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할때 교회에 자꾸 싸움이 많고 시끄러운 이유는 교회에는 어린이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사어린이, 장로어린이, 권사와 집사어린이가 많다는 거죠” 이런 제자들에게 34절에 말씀하십니다. 새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해라” 근데 사실 이건 새계명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이미 구약에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이 “새계명”이라고 말할까요? 그것은 구약의 사랑법은 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인데 이것을 “동해 보복법(레스탈리오)”라고 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똑같이 보복하는법인데 이게 왜 사랑법이냐? 가령 누군가 해를 가할때 팔한쪽에 상해를 가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그사람에게 팔한쪽만 벌을 주면 되는데 사람의 감정이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나니까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한만큼만 보복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법인것입니다. 이걸 동해보복법이라고 부릅니다. 근데 예수님은 이것에서 좀더 업그래이드가 됩니다. 34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자기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사랑을 했습니다. 즉 “자기 소멸적 사랑입니다.” 이것은 촛불과 같습니다. 촛불은 불을 태울때 자신을 소멸하며 빛을 냅니다. 그 빛으로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주고 빛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부부가 이사랑을 할때 자녀들이 이사랑을 할때 친구와 동료들이 이사랑을 할때 우리는 끝까지 빛나는 사랑이 될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사랑하려면 “나를 부인하라” 36-38

  자기 부인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36절부터38절까지는 베드로에게 일어날 일을 예수님이 예언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지금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는 십자가의 길을 쫓아오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성령을 받고 사도가 되면서 주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거란 의미입니다. 근데 여기서 베드로가 깨닫지 못하고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하자 38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그래? “오늘 닭이 울기전 3번이나 나를 부인하게 될거다.”십자가의 3번 부인사건을 예언하죠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늘 신앙이 있노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상처되는 한마디만 들어도 확돌아서버리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족한 나의 성격과 기질을 부인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해버립니다. “난 이일 못해, 난 저사람과 못해, 또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넙니죠. 저 사람 때문에 못해, 저일때문에 못하겠어” 사실은 내 감정이고 내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부인해야 주님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데, 부인하지 못하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싸움을 합니다. 새벽예배에 참여할때도 회사에서 일 할때도 가정일을 볼때도 내 자아가 실수 할 수있다는 걸 알고 날마다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 반대일 때가 더 많죠 이것을 알아야 끝까지 사랑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6절에 이 말씀을 한것입니다. 지금은 안되는데 나중에 된다” 나중은 언제입니까? 언제죠?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에 나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한해도 새벽을 잘 사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2026년에도 새벽의 기도를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붙들고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사역을 지키고 끝까지 영혼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중보제목: (화:목장) vip를 위해서 영적 싸움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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