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48 요13:1-20 끝까지 사랑하려면?
2025.12.26 07:08
예수인교회
나의 주 그리스도 48 요13:1-20 끝까지 사랑하려면? 찬송:309/통409 목마른 내 영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말이 왜 중요할까요? 사랑은 우리도 다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친구와 연인을 사랑하는등, 근데 문제는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Faithfulness, 신실함 충성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헬스장에서도 쓰입니다. 가령 어떤 자세를 갖추고 그상태로 정해진 시간까지 버틴다는 의미로 페이스풀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처음제자들을 사랑했던 그마음 그대로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15절을 보니까 내가 본을 보여주었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 보여주는 모든 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방법을 보여줬다는 의미입니다. 그 2가지 은혜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끝까지 사랑하려면 ‘부르심과 소명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분명한 이유와 사명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끝까지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의 ‘부르심’을 알아야 합니다. 왜 내게 이 가정을 주셨는지, 왜 이 가정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로 보내셨는지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이유를 알 때, 우리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부부가 서로의 단점을 갖고 싸웁니다. 그럼 서로의 단점이 해결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 자녀가 말을 듣지 않기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럴때 이걸 위해 이 가정에 나를 부르셨다는 부르심과 사명을 깨달을때 가족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문제도 똑같습니다. 단순히 공부하고 돈을 더 벌기위해 온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곳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음을 위해 이곳에 보냈다는 부르심과 사명을 회복할때 우리는 그곳에서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편한교회 마음이 맞는 교회를 찾습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그런교회는 지구상에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나를 보내신 이유는 그 교회의 부르심을 배우고 거기서 빚어져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걸 알때 우리는 그곳에서 끝까지 사랑할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하려면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예수님은 지금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식사를 하실 때 유대인들은 한 팔을 받치고 거의 누워서 식사를 합니다. 그래서 식사중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것을 결심할때 표현하는 표현법입니다. 그 행위가 뭐였습니까? 5절입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자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색은 ‘고귀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겉옷을 벗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선생님으로서의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는 것은 ‘그 당시 종이 손님의 발을 씻길 때 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잘알듯이 중동지역은 건조하여 먼지가 많고 신발이 대부분 슬리퍼 형식이기에 밖에 다녀오면 가장 더러워지는 부위가 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종은 절대로 발을 닦지 않습니다.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 종들이 발을 닦는데 예수님께서 그 발닦는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입니다. ‘섬김’의 핵심은 ‘낮아짐’에 있는데 이런 낮아짐이 있을 때, 가정을 살아나고, 교회는 회복되며, 삶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를 아실것입니다. 1912년 32세 나이에 독일계 미국인 간호사로 한국에 온 서서평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한복을 입고 된장찌개를 먹으며 한국인으로, 한국인의 친구로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전라도 궁핍한 지역의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보살폈습니다. 입양하여 키운 고아가 열 네 명, 오갈 곳 없는 과부를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서른여덟 명이었습니다. 약한 자들을 위해 많은 헌신과 섬김을 베풀다 54세 나이에 영양실조로 삶을 마감한 그녀는 자신의 몸마저 의학연구용 시신으로 기증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남루한 방에 남은 것은 낡은 옷가지 몇 개와 반쪽이 된 담요, 동전 일곱 전, 강냉이 두 홉, 그리고 그의 좌우명이 적힌 메모지 한 장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날마다 예수님의 이 음성을 들으며 살았던 것을 봅니다. 성공하려고 하는사람은 끈임없이 주변사람을 이용하거나 밝아서려고 합니다. 그런데 섬기려는 사람은 남을 살리고 도우며 남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때 끝까지 사랑할수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