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45 요 12:1-11 일할래 섬길래
2025.12.23 07:12
예수인교회
나의 주 그리스도 45 요 12:1-11 일할래 섬길래 찬 96/ 통94 예수님은 누구신가
아이들이 어릴때는 엄마가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서로 먼저하겠다고 했는데 조금 크면 서로 안할려고 합니다. 왜그럴까요? 아이들은 스스로 나이가 들면서 일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적으로 볼때는 오히려 일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오늘 마리아가 드린 향유옥합 사건을 통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일이 섬김이 되려면 “주님을 위한 일로 만드십시오.” 1-2
1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사로의 사건이후 죽이려 하자 잠시 베나니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때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이 잔치는 주님께 감사로 드린 잔치지만, 이일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결국 이 잔치는 주님의 장례를 기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때 2절 말씀에 마르다는 여기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쓰인 원어 “디아코네요”는 “섬기다, 수종들다”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그녀는 단순한 잔치일을 한게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수종든 것입니다. 여기서 일의 첫번째 의미가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은 “일”이 아니라 “섬김”이 되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지치거나 낙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때문입니다. 못마땅한 배우자를 상대하거나 집안일을 할때도 이 일이 주님의 뜻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직장인이 직장에서 일 할때도,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할때 이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노력과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반대로 오히려 교회에서도 내가 하는 일이 주님과 상관없이 그저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힘들것입니다. 어느 대형교회에서 매주 냄새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노인분이 계셨습니다. 한 성도가 볼일을 보다가 그분에게 버려진 화장지를 그분에게 좀 치워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그 교회의 선임 장로님이셨습니다. 이분은 주일 예배를 드리며 주님앞에서 바울이 자신을 노페물로 고백하는 걸 보면서 자기도 화장실을 청소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수년째 화장실을 청소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일하는 사람이 될때 서로 짜증내는 사람이 될수도 있지만 그 일이 주님을 위한 일이 될때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섬김이 되는걸 봅니다. 그때 그일은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는 하늘의 일이 됩니다. 우린 오늘도 다양한 일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냥 일을 할지? 아니면 주님을 위한 일을 할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섬김이 되려면 “한계를 넘을때 헌신이 됩니다.” 3
헌신이란? 롬12:1절에 보면 모든 믿는 자들이 주님께 몸을 드리는 귀한 섬김입니다. 그런데 헌신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일할때 각자의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는 바로 “희생의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거나 피해를 입게 될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넘어서 드리는 드림이 바로 “주님을 위한 헌신”이 됩니다. 3절을 보면 이때 “막내 마리아는 나드향유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덕분에 그 향기가 온집안에 가득찼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나드향유는 300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1년치 품삯이었습니다. 1년동안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전에 신부가 신랑을 맞기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오랫동안 준비한 정성과 섬김이 들어있는 가장 가치있는 예물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 그것도 발에 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발은 양말이나 신발이 없었기에 가장 더럽고 불결한 부위로 유대인은 절대 손도 대지 않고 이방인 종들이 닦아주던 부위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치있는걸로 가장 가치없는걸 위해 드렸습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것이 “헌신”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우며 가장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낮고 천하며 죄인중의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희생 헌신입니다. 그 헌신의 피가 우리를 살렸고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할때 그것이 주님을 위한 헌신의 시점까지 나갈수 있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을 자세히 보니 그 향기가 온 집에 가득찼다고 말합니다. 그 헌신이 가득한 가정, 그 헌신이 가득한 일터와 학교는 예수님의 향기가 넘쳐나는 축복의 가정이 될것입니다.
셋째 섬김이 되려면 “낭비로 만들지 마십시오.” 4-6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일이 무가치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할때 우리는 그것을 “낭비”라고 말합니다. 4절을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중 가롯유다가 그랬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시선”입니다. 시선이란 보는 방향을 말합니다. 시선은 한자로 눈이 향하는 길 이란 뜻입니다. 자꾸 가다보면 그곳에 길이 생기듯 자꾸 그쪽으로 바라보는 걸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볼때도 좋게 보는 사람은 늘 좋게 보지만 늘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부정적으로 보곤 합니다. 이것이 시선입니다. 가롯유다는 사랑하는 예수님보다 비싼 향유를 바라봤습니다. 사람은 보는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할때 그 일의 가치보다 먼저 시간당 페이나 효율을 볼때가 많습니다. 그때 낭비란 생각이 들면서 대충일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욕심”입니다. 6절을 보면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게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에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일할때 이런저런 명분을 만들어 불평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형평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내안에 욕심이 작용할때가 많습니다. 이때 주님을 위한 고귀한 일은 낭비가 됩니다. 특히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가 이처럼 낭비가 될때가 많습니다.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에 따라 얻는건 별로 없고, 오히려 무시와 냉대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가롯유다가 주님의 제자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이런 시선과 욕심을 갖게 됬을까요? 그도 처음에는 기쁨과 감사로 섬기며 힘에 지나도록 섬겼을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주님보다 효율과 시간을 따지고 주님보다 내마음에 드는 욕심과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랫더니 누구보다 주님을 위한 섬김과 희생을 해야할 사람이 그것을 낭비로 만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한 섬김이냐 아니면 무가치한 낭비냐 이것을 판가름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일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하며 오히려 낭비를 주님을 위한 드림으로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넷째 섬김이 되려면 “타이밍을 잘 마추십시오.” 7-8
7-8절을 봅시다. 주님은 일을 할 수 있을때가 있고,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때가 온다고 말합니다. 즉 섬김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말합니다. 이 타이밍을 잘 맟주는 사람이 되려면 몇가지를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는 관점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나의 타이밍이 아니라 주님의 시간에 맞춰지는걸 봅니다. 내 상황도 중요하지만 내 시간만 고려한다면 주님의 일을 하기 어려울수있습니다. 또하나는 비교의식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마르다와 나사로와 마리아의 역활이 틀립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했듯이 일을 맡은자는 남과 비교하기보다 충성되게 그 일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하나는 게으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섬기지 못하는 것은 미루는 습관때문입니다. 그런 시가 있다고 했죠? “다음에 할께요. 다음에 술한잔 합시다. 다음에 식사한번해요 다음에 놀러갑시다.” 그런데 그런 다음이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를 부르실때 그 타이밍을 잘 맞추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