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43 요 11:28-44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2025.12.18 09:5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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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43 요 11:28-44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찬 430/통 456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지만, 내 계획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간구 합니다. 나의 한계 속에 하나님을 두고 살아갑니다. 오늘 나사로의 죽음의 사건에도 마르다, 마리아 모두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성공을 주셨더라면…, 내가 그 대학에 붙었더라면…내가 돈이 얼만큼 있었더라면…내가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씀하시는지를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보시고 비통하고 괴로워하셨습니다.(33절)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고 괴로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어는 분하고 슬퍼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왜 분노하시고, 왜 슬퍼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보시고 함께 슬퍼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 되십니다. 그리고 또한 분노하셨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부활과 영생에 대해서 가르쳤는데도, 그 소망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죽음에, 여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과 행동에 예수님이 답답함을 느끼며 안타까워하며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전히 믿지 못하는,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모습에 비통하시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예수인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던 믿음의 고백들처럼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39절)

39절에 예수님은 이미 죽은 나사로의 무덤을 보며, “돌을 옮겨놓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은 지 하루에서 이틀 정도였다면 이 말에 순종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 4일이 넘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자매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무덤의 문을 열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돌을 옮겨 놓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명령하셨고, 나사로는 마치 잠에 깬 사람처럼 부활하여 걸어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보다는 믿음이 먼저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40절)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23절-27절까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7절에 마르다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마주한 마르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칭찬의 느낌보다는 ‘왜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거니?’라는 안타까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말했던 것들을 믿지 못하는 것,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해 오셨던 것들을 잊어버린 모습들에 답답하고 화를 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는 아마도 100% 이해가 된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범위가 거기까지였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이 받아드릴 수 있는 범위까지 잘라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기억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교회 성도 여러분>

“만약 예수님이 ~~ 해주셨더라면, 나에게 기적을 보여주셨더라면, 내가 기도한 것을 이루어 주셨더라면…”이라고 생각하시며, 내 생각 안에서, 내 경험 안에서 예수님을 가두어 둔 것은 아닙니까? 여전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내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수용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 말씀보다, 내 성격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이해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유월절에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지 않고, 나사로를 몰래 부활시켰더라면…우리의 왕이 되어서 로마로부터 독립시켜주셨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틀린 말인가요? 전부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났습니다. 신앙은 이해가 먼저가 아닙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상식이, 효율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닌, 우리의 생각이 아닌, 세상의 효율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시는 예수인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기도: 우리를 보시고 함께 슬퍼하시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중보기도(목:지도자/가정/나라): 2026년도에 새롭게 세워진 서번트, 목자, 사역팀장, 리더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시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다시 부흥하고 회복하게 하소서, 미국과 한국에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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