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42 요 11:1-27 나에게 이틀의 시간은...

2025.12.17 09:2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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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42 요 11:1-27 나에게 이틀의 시간은… 찬 421/통210 내가 예수 믿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나의 잘됨과 못됨으로 구분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하는데 일이 막히거나 몸이 아프거나 고난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두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1장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길래,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기에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서 죽은 것일까요? 그러나 5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라고 나옵니다. 관계에 문제도 없었고, 특별히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나요? 오늘 11장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게 될 수 있는 고난을, 암흑과 같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1-5절)

1절에 ‘한 병자가 있었는데…’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3절에도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나사로는 굉장히 위급하고 중한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정에 큰 위기, 고난이 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옥합을 드린 칭찬받은 인물입니다. 이 가정은 예루살렘과도 가까워서 예수님이 자주 사용하셨던 가정입니다. 5절에 예수님이 또한 사랑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 가정에는 축복이, 성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사로가 안 아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아프더라도 예수님이면 충분히 고쳐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문제가 왔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깁니까? 우리는 복을 너무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25-26절을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복음 그것이 아닙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 그분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진짜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축복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는 이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그 예수님을 더욱더 믿어지게 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의 결과로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난이 찾아옵니다.(4절)

우리 삶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과 어려움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됩니다. “왜 나한테…이유가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죠.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나님의 뜻이었구나.’라고 고백합니다. 마르다, 마리아는 나사로의 중병과 죽음이 다가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는, 바로 달려오실 줄 알았는데 이틀을 그곳에 더 계셨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이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나사로는 죽게 되었습니다. 죽고난 후 나흘(4일)이 지나버립니다. 이제는 정말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4절에 나사로의 죽음을 아시고도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을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 이틀을 더 방치하심이 왜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말씀하시나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나사로의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며,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게 되셨고,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영광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온전히 이틀을 거기에 더 유하셨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나흘을 온전히 죽어 있어야 살리셨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여줄 수 있고,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짧은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낫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 이틀을 그곳에 더 머무르십니다. 의도적으로 일부러 머무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이틀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그 이틀 동안 예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신 것일까요? 왜 응답조차 하지 않으셨나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까 5절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아서 안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는 유대 지방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완전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도 아시지만 들어가셨습니다. 왜요? 사랑하시니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친하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아서, 방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침묵하셨습니다. 침묵뿐만이 아니라 이틀을 더 그냥 두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견디고 났을 때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틀을 더 보내셨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으니,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내 것을 많이 드렸으니까 ‘이틀의 시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이틀의 시간을 ‘믿음으로 잘 견뎌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할 수 없어서,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틀을 더 머무시는 것’일 수 있음을 믿으시고, 오늘도 믿음으로 그 이틀의 시간을 잘 살아내실 수 있는 믿음의 예수인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기도: 생명이신,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하소서, 삶의 고난과 문제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게 하소서.

요일기도(수:다음세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는 세대가 되게 하소서, 연합예배를 통하여,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말씀위에 신앙을 세워가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섬기는 리더와 교사를 세워주시고 보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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