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39 요 9:35-41 누가 진짜 맹인입니까?

2025.12.11 14:2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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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39 요 9:35-41 누가 진짜 맹인입니까? 찬 325/ 통 359 예수가 함께 계시니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이라고 합니다. 컴퓨터 사용을 잘 못하는 사람을 ‘컴맹’이라고 부릅니다. 영적인 눈이 없는 사람을 ‘영맹’이라고 미국의 한 목사님께서 표현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표현이었지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 눈은 보이지만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 영적인 눈이 막혀서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바로 바리새인, 유대인, 제사장, 율법학자들을 말하고 있어요. 이들은 앞을 봅니다. 성경 말씀도 많이 알아요.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예수님이 눈앞에 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요. 이런 것을 ‘영맹’이라고 표현하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누가 진짜 맹인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떤 것을 영적인 맹인, 눈뜬 맹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영적인 맹인이라고 부릅니다.(35절)

예수님은 맹인이었던 자의 육체의 눈을 고쳐주시고, 그 다음 영적인 눈도 고쳐 주시려고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시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묻는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바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묻습니다. 구분의 기준점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입니다. 38절에 그자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하고는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였다.”라고 나옵니다. 그는 인자를, 예수님을 믿음으로 육체의 눈에 이어 영적인 눈도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엎드려 절하였다고 나오죠. 이것은 바로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엎드리는 것입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을 말하죠. 겸손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인간이 인간됨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겸손한 모습으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자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자기를 의식하고, 내세우며, 자신의 의로움이 중요한 사람, 선과 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자신인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 사람은 영적인 맹인된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맹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맹목적인 믿음은 영적인 눈을 가리게 됩니다. (40절)

바리새인들은 이 맹인의 눈을 떴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예수가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했는가? 왜 우리가 잘 지키고 있는 율법, 종교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 바리새인들은 이런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보이는 것들을 믿으며 살게 되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믿으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한 번 눈을 가려지게 되면, 어떤 것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무엇이 진리인지 확인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중에는 믿지 않기로 결심한 후에 예수님을 죽이려고만 한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어느 선까지만 따라갑니다. 왜요? 그 이상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나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바뀔까요? 아니요. 절대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의 뜻과 성경이 다를 때, 성경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경에 맞추게 되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회개가 없는 믿음은 영적인 맹인이 됩니다.(40-41절)

예수님께서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겠다고 하니,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맹인이라는 것인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율법을 통달했다고 해서 죄로부터 자유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율법을 많이 알고 율법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분별하는 능력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분 앞에 우리가 진심으로 무릎을 꿇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단순히 율법을 아는 것만으로, 율법을 암송하는 것만으로, 가르치는 것만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전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에 철저하게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맹인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하는 이야기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지금 나에게,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드리고, 새벽기도회 나오고, 찬양 듣고 하니까 안심이 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도 그들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우리가 매일 같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보고는 있지만 맹인과 같을 수 있습니다. “누가 진짜 맹인입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와는 세상과는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기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하소서, 나의 고집과 방법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과 매일 관계를 맺으며 열매 맺게 하소서.

중보기도(목:지도자들/가정/나라를 위하여): 교회 지도자들에게 능력과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각 가정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고 말씀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미국과 한국에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게 하시고, 안정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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