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33  요 8:12-20 올바른 목적이 이끄는 신앙

2025.12.02 07:0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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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33  요 8:12-20  올바른 목적이 이끄는 신앙  찬516/265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모든 사람은 인생에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날마다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가령 미팅이 있는 사람은 그 준비를 합니다. 물건을 살사람도 그준비를 합니다. 즉 사람은 목적한 것을 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의 바른 목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초막절 마지막날 등불제에 중요한 빛을 통해 우리 인생의 올바른 목적이 무엇이 되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첫째 무엇을 따를것인가? 12

  예수님은 초막절에 두번째 행사였던 등불제에 자신을 빛으로 소개합니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왜 하필 빛으로 소개했을까요? 사람들은 야밤에 빛을 비추며 출애굽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구원으로 인도했던 하나님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빛이 자신이란걸 나타내기 위해 빛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빛을 볼때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하나는 “빛가운데 나갑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밤에 뭔가 반짝거리면 그빛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볼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빛은 인도자, 가이드를 상징하는데 이때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입니다. 빛가운데 있으면 나의 더러움과 잘못된 모습을 볼수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속에서 예수님을 생각할때 이런 반응이 나타납니다. 내가 잘못된 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미워했을때, 못된 마음을 먹었을때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끄러워질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빛되신 주님을 바라볼때 어둠을 피하게 되는것입니다.(12절) 그러나 모두가 그런것은 아닙니다. 빛을 만날때 다른 하나는 “반대로 피합니다.” 잠을 깊이 잘때, 어둠속에 오래 있을때 빛을 비추면 오히려 빛을 꺼버리거나 이불을 뒤집어써버립니다. 성경에 사울왕은 빛의 부름으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지만 빛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어두운 밤에 신접한 여인을 찿아가 어둠속에 사라졌습니다. 신약의 가롯유다도 빛의 부름에 12제자가 되었지만, 그는 어두운밤에 나가서 에수를 은30에 팔고 어둠속에 사라져갔습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예수안에 있었다면 분명히 빛이 비췄을것입니다. 양심에 찔리는일, 부끄러운일, 잘못된 행동들을 깨닫게 됬을때, 그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빛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무시하고 피할것인가 오늘 하루 빛을 따르는 사람들 되시길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무엇을 믿을것인가? 13-19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13절) 13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니,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못하오.” 왜냐면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은 두명이상이 동의할때 법적 증거자료가 될수있는데(17절) 예수님의 증언은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은 두가지로 답변합니다. 하나는 나는 참되다.(14절)입니다. 예수님은 모든것을 아시고 그 모든 말은 진리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말보다 과학적 증명을 신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입니다. 왜냐면 모든 과학적 이론은 가설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은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력이 나오고 물체의 가속도등의 만들어지는데 이 만류인력의 법칙은 특정한 공간과 힘이 작용할때란 가설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상황이 틀려져도 모든 과학원리들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과학만큼 불안한 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믿음 만큼 정확한 진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기록된 말씀만큼 정확한 진리는 없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16절)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두명의 증인제도가 생긴것입니다. 그런데 그 증인도 어렵습니다. 제가 오래전 사거리에서 상대차가 불법좌회전을 하면서 직진이었던 제차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상황을 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쉽게 증언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로가 못믿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수없듯이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가 증거할수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증인으로 하나님을 모신것입니다.(18절) 이 말이 쉬운것 같죠? 그러나 우리중에 이렇게 말할수있는 분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내가 정직하고 분명한 사람인걸 증명하십니다” 누구도 이말을 할수없습니다. 우린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가지를 점검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앞에 진실한가? 그리고 무엇을 더 신봉하는가? 과학 선생님의 말?, 믿음직한 친구의 말?, 신문기사의 말?, 정치인의 말?,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진실하고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무엇을 드릴것인가? 20

   요한은 마지막 문장에서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마칩니다. 요8:20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때에 헌금궤가 있는데서 하신 말씀이다…. 당시 바리새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특별히 헌금에 있어서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릴때 온전한 제물을 드리려고 노력했을뿐만 아니라 십일조정신이 투철하여 가족들이 먹는 밭에 심은 식물(박하/회향/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마23:23)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비판하셨습니다. 십일조자체를 비판한것이 아니라 잘못된 십일조 정신때문입니다.”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모든 물질과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일조만 드리면 남은 십의 구는 다 내것이기에 함부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일주일에 주일예배 한번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 십일조를 냈으니 나머지 물질은 내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생각, 주일외에는 한주간 방탕한 삶을 살아도 된다는 생각등으로 신앙을 분리시키는 삶을 산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모든것을 주님이 주셨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한주의 모든 것을 믿음으로 올려드리는 믿음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앞에 진실한 삶을 살며 주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며 온전한 십일조의 삶을 드리는 한주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목자/VIP/환우들) 15개의 목장모임과 인도하는 목자들을 위해 중보합시다. 성탄의 달에 주님을 소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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