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17 요한복음 5:1-18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2025.10.29 10:06
예수인교회
나의 주 그리스도 17 요한복음 5:1-18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찬 300/ 통 406 “내 맘이 낙심되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내 안에 욕심과 교만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되고, 듣지도 못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당시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누구보다 말씀에 대해서 잘 알았고, 누구보다 신실하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핍박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의 욕심, 권력을 내려놓지 못했으니까요. 요한복음 5장은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체험시켜주시는데, 그런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도,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2000년 전 그들의 문제뿐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보겠습니다.
첬째. 여전히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6절)
유대 사람의 명절이 되어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곁에 베데스다 못에 갔습니다.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9m 아래에 있고 축구장만한 크기의 못입니다. 그곳에 수많은 병자들이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3-4절에 가끔 천사가 와서 물을 휘저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전혀 은혜와 자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내려갈 수 있나요? 가장 건강한 사람들, 돈이 있어서 사람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희망고문만 할 뿐입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란, 내가 할 수 없고, 갚을 수도 없은데 주신 것입니다. 이들에게 평안이 있나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넘어뜨려야하는 무한 경쟁시스템입니다. 말은 은혜의 집이지만 세상의 원리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그곳에 세상의 가치와 논리를 가지고 들어와 세상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평안과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낫고자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38년 된 병자는 “아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방법을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1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말씀으로 고치실 수 있는 예수님을 두고서 자신의 방법을 부탁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할 때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예수님의 방법이 아닌 내 생각, 내 방법대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내 방법과 고집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둘째.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13절)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9절에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38년 동안 아팠다가 방금 고침을 받은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은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안식일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분노합니다. 왜 분노합니까?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분노만 남았습니다.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진자를 보며 분노한 이유가 뭔가요? 자신이 받은 더 큰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38년 된 병자도 고침을 받아서 누가 고쳐주었냐고 묻자, 누군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이며 죄성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deal을 합니다. ‘이것 해주시면 나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살 수 있나요? 아닙니다. 금방 잊어버려요. 이미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후 십계명을 주시면서 왜 안식일을 주셨습니까? 그들이 종살이 하며 누리지 못한 안식을 보장해주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너희도 종살이 할 때 안식을 못 누려 힘들었지? 마찬가지로 지금 너희와 함께 있는 종들, 나그네, 동물까지도 안식할 수 있도록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려면 반드시 그들은 하나님께 먼저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기쁨으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병고침의 은혜보다 분노가 앞선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17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일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일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6절에 ‘그 사람을 보시고, 아시고, 물으셨다.’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프고 힘들 때 방관하시지 않고 계속 지켜 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다가와 물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때 우리는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여전히 나의 방법을 고집하시겠습니까? 내 욕심만 간구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회복시키시고 사랑하십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시고 흘려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며 다른 자들을 향해 정죄하지 않고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기도: 내 방법과 욕심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게 하소서.
요일기도(수:다음세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방법과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진 리더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리더들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