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13 요3:22-30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삶

2025.10.21 07:0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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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 그리스도 13 요3:22-30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삶  찬370/통455 주안에 있는 나에게

우린 날마다 갈2:20절의 말씀처럼 십자가에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인생 되길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는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요? 오늘 이 삶을 인생전체로 보여준 세례요한의 단적 모습을 통해 그 3가지 삶을 조명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나는 죽고 예수가 살려면 “하늘에 맡기는 삶을 사십시오.” 22-27

요3:22-23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오늘 본문은 그 뒤에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뒤란 엊그제 본 니고데모와의 대화이기도 하겠지만 학자들은 요2:12에 가나안 혼인잔치 이후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왜냐면 요한복음은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사건 중심이기에 첫번째 기적이후 사역이 시작된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됬다는 점입니다. 근데 문제는 “세례를 주는 사역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게 왜 문제죠? 23절 후반에 “요한도 거기서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커피숖을 열어서 거의 독점해서 인기가 절정이었는데 유명한 바리스타 한명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가계 근처에 비슷한 커피숍을 차렸는데 점점 인기가 좋아서 우리 손님까지 몰려가는 분위기인 것입니다. 이럴때 나라면 어떨까요? 직장에서 비슷한 동료가 갑자기 나보다 인정 받을때, 학교에서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던 친구가 갑자기 나보다 잘볼때, 목장에 목원이 다른 목장에 가고 싶다고 할때 여러분 어떨까요? 근데 24절을 봅시다. 24절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헤롯왕 문제 때문에 점점 세례요한의 입장이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25절에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정결예법과 논쟁에 대해 학자들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래중 어떤것을 받아야 되는가?”에 대한 논쟁이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이어지는 2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3:26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께 세럐를 받으러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럴때 나라면 어떨까요? 내 느낌이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 동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요한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27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즉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것에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더이상 반응하지 않는 걸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답답하거나 화가 나거나 두려우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을 뽑고 내려와서 내 힘으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아말렉군이 쳐들어오자 군인들이 점점 도망치고 요동하자 사무엘을 기다리지못하고 자기뜻대로 번제를 올려드리면서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새벽성도여러분 답답한 상황, 화가 나거나 두려운상황속에 조금만 더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뜻을 기다려보시길 바랍니다. 그때 나의 뜻이 죽고 주님의 뜻이 살아나는 삶이 될줄 믿습니다.

둘째 나는 죽고 예수가 살려면 “선을 넘지 않는 삶을 사십시오.” 28

세례요한은 두번째로 중요한 말을 나눕니다. 28절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세례요한은 당시 엘리야나 모세, 또는 메시야로 오해를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뭘보면 압니까? 예루살렘의 남녀노소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와 세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BTS정도의 인기와 교황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위치와 경계선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 즉 심부름꾼 정도 밖에 안된다고 자신을 분명하게 낮추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통사고가 나는 것은 각자의 선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가려고 옆차선의 차량을 무시하고 차선을 변경할때, 또는 빨리가려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할때 결국 사고를 일으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선을 지키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섬김으로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는 절제와 질서가 필요합니다. 부부관계에도, 자녀관계에도, 직장동료관계에도, 심지어는 교회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져야 할 선을 위해 나를 죽이고 예수가 보이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나는 죽고 예수가 살려면 “들러리의 삶을 사십시오.”

요한은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랑의 친구 즉 들러리의 비유를 듭니다. 29절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신랑(예수님)과 신랑의 친구(들러리)에 비유합니다. 보통 결혼식에서 신랑의 친구들은 들러리로서 신랑을 신부앞에서 멋지게 꾸며주고 신부에게 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들러리는 신부가 신랑에게 가는 것을 질투하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이 성공적으로 마칠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29절). 이렇게 자신의 뜻은 죽고 예수님의 뜻을 성공시켜주는 삶, 들러리 삶” 이것이 요한의 인생목표였습니다. 이 삶이 쉬울까요? 어렵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본성은 내뜻을 위해 남의 뜻을 희생시키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할까요? 한국의 16대 대통령때부터 지금의 대통령까지 선임자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리더십의 민낮입니다.(마10:26) 그래서 가정교회에서는 이것을 섬김 또는 성공시켜주는 삶 이라고 부르면 이것을 훈련합니다. 가령 내가 성공하려고 남을 밝아서는게 아니라 내가 죽어서 남을 성공시켜주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삶을 성공시켜 주셨듯이 우리도 주변에 붙여주는 사람들을 성공시켜주는 것입니다. 목자가 목원을 목원들이 목자를 목사가 성도를 성도들이 목사를 직장의 상사가 부하직원을 부하직원들이 직장 상사를 성공시켜주는 삶, 들러리가 되어주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를 붙잡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나는 쇠하여 지고 예수가 흥해지는 삶이 되야 합니다

나는 쇠하여 지고 예수가 흥해지는 삶이 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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