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9 요2:13-22 주님이 엎으시는 예배
2025.10.14 07:06
예수인교회
나의 주 그리스도 9 요2:13-22 주님이 엎으시는 예배 찬 191/427 내가 매일 기쁘게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아는 예수님의 성전을 엎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흔히 십자가사건 전에 일어난걸로 아는데 요한은 예수님의 초기사역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마다 예수님이 성전정화가 중요했기에 처음에 한번 나중에 한번, 총 2번을 했다. 어느 학자는 사도요한이 임의로 예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앞부분에 기록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어찌되었든 예수님이 성전예배를 새롭게 정화하길 원했다”는 점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오시면서 예배의 핵심이 틀중심에서 본질중심의 예수가 주인되는 예배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바꾸려는 예배는 어떤 예배였을까요? 그걸 살펴보며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예배의 본질을 바꾸라. 입니다.
본질이란 그것의 핵심, 중심을 말합니다. 그럼 예배의 중심은 뭘까요? 그 당시에는 “제물”이었습니다. 왜냐면 죄를 사하려면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준비하려면 1년이상 흠없고 깨끗이 키운 짐승이 필요한데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라 죄를 지을때마다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 숫자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거기다 멀리서 가져오다 보면 상처입기 때문에 성전에서 예배자들을 돕기 위해 제물을 판매하기 시작 한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4절 그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유월절을 맞아 성전예배에 왔는데 이 장면을 본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 엎어 버립니다. 그게 15-16절입니다. 요2:15-16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왜그랬을까요? 처음엔 예배자들을 돕기 위해 제물을 판매 했지만 갈수록 이윤을 남기기 위해 부당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자들도 되도록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싸고, 질 떨어지는 제물을 구매한 것입니다. 즉 판매하는 사람이나 구입하는 사람 모두 손해 안보려는 “장사꾼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제물을 힘들게 드리게 한 이유는 그 제물을 준비하며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죄의 무게와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게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희생과 섬김의 마음은 사라지고 희생 안하고 손해안보려는 장사꾼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성전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곳으로 성전까지 못들어가는 이방인들이 간접적으로 제사에 참여 할 수 있도록 만든 “이방인의 뜰” 이었습니다. 근데 그들은 이방인들을 내쫓고 자신의 이익과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든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현대 교회와 성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교회를 처음 나올때는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그런데 다닐수록 편한예배, 편한 봉사, 손해 안보려는 생각에 물들어 갑니다. 거기다가 구역마다 늘 기도제목이 뭐죠? 이상한 죄인이 들어오지 않게 하소서. 늘 의인만 들어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구역모임에 예수님의 말씀은 없고 자신의 삶만 나누는 커뮤니티가 되고 있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나의 희생과 헌신, 섬김으로 영혼이 구원을 얻는 예배가 되야 합니다. 편한 예배 편한 훈련이 아니라 불편한 예배, 불편한 훈련이 되야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진정한 섬김이란? 내가 편해지면 늘 남이 불편해집니다. 내가 불편해져야 남이 편해집니다. 섬김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예배의 이 본질이 바뀌길 바랍니다.
둘째 예배의 열정을 바꾸라 입니다.
제자들은 당시 예수님의 성전개혁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요2:17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이것은 시69:9 다윗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자 그주님이 있는 전을 향하는 열정의 마음이 넘쳤다는 표현입니다. 예를들어 중학생 자식을 끔찍히 사랑합니다. 그럼 그자녀가 있는 중등부를 위해 열정적으로 섬김이 나타나겠죠. 예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예배의 희생과 헌신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예배자들에게 이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웃긴것은 이들의 질문입니다. 요2: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예수님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주님을 열렬렬히 사랑하는 다윗의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설득할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역할때 한 청년이 저에게 “자기 교회 예배가 너무 지루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인즉, 어떤 특별한 찬양도 없고, 뭔가 대단한 영적 감흥이나 예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건 영화관에나 가서 보고 예배를 드릴때는 적극적으로 참여봐”라고 했습니다. 모르는 찬양도 따라해보고, 기도도 소리내서 해보고, 설교도 멍하니 듣지 말고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랫더니 몇주 후에 저에게 “목사님 처음으로 예배가 이해됬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설교자나 찬양팀이 바뀐게 아닙니다. 예배자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저는 스포츠 중에 야구경기보는게 제일 싫었습니다. 두팀이 9회를 반복 게임합니다. 총 18회죠. 공던지고 때리고 받고 점수도 크게 나지도 않고. 너무 지루한거죠. 근데 어느날 교회에서 우연히 직접 야구를 하게 됬습니다. 근데 제가 제법 잘치더라구요 4타수 3안타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내순서가 기다려지는 거에요. 그 게임 이후에 야구 경기를 보는 나의 태도가 달려졌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살아나려면 구경꾼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되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걸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열정을 회복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예배의 성전을 허물라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기적을 요구하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요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이것은 중요한 두가지 성전변화를 예언한 표현입니다. 하나는 “실제 성전의 무너짐”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 헤롯성전은 이사건이후 AD 69년에 로마의 티토스장군에 의해 완전히 무너집니다. 이후 예배는 성전을 벗어나 각자의 삶의 자리인 회당에서 드리는 회당예배가 됬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육체의 무너짐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지듯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것이고 사흘만에 다 부활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또한 십자가를 통과하며 육신중심의 삶이 무너지고 영적존재로 부활해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나오기 전에 여러분은 몸도 깨끗히 씻고 옷도 고르고 골랐고 머리도빗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을 것입니다. 근데 영적 준비는 얼마나 하셨나요? 주일예배를 위해, 오늘 받을 은총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고 오신분 있나요? 예배로 나오기전 내속에 더러운 마음 미움, 두려움등을 정결하게 씻기위해 영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오셨나요? 여러분 삶의 패턴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경학자 유진 피터슨은 그의 저서에서 “영성 생활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긴 순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일 짧은 예배 시간만 거룩한 척하지만, 실제 예배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이란것입니다. 한주의 삶이 미움, 질투, 혹은 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주님은 그 예배와 삶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는 예배는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 엎어뜨리는 은혜가 시작 되길 축언드립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예배를 엎으십니다.
첫째 예배의 본질을 바꾸십니다. 장사꾼의 마음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 예배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구경꾼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되야 합니다.
셋째 예배의 성전이 무너져야 합니다. 육적틀을 무너뜨리고 영적 삶이 회복되야 합니다.
이한주도 이런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