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그리스도 5 요 1:29-34 예수를 바라봐야 할 이유.
2025.10.07 07:08
예수인교회
나의 주 그리스도 5 요 1:29-34 예수를 바라봐야 할 이유. 찬259/ 통193 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써
지난주 특새가 은혜속에 마쳤습니다. 많은 은혜와 회복이 있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으로 다시 넘어와서 오직 예수의 복음에 다시 집중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가 예수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히12:2)여러분 예수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했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예수를 바라봐야 하는 몇가지 이유에 대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죄사함을 받기 위함입니다. 29절
교회를 다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요한의 첫번째 증언을 볼까요? 요4: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도록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이 오직 한분 예수를 바라보도록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 그분이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어떤이는 “목사님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고 한 하나님으로 구원받을수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왜 오직 예수만 믿어야 하나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로 죄를 지었을때 곧바로 죄에 대한 해결책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창3:21에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렸던 짐승의 가죽이었습니다. 즉 양을 죽여서 그피로 죄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가령 불교처럼 참선을 해서 득도한다든가? 이슬람처럼 고행이나 죽음으로 천국을 간다든가? 기타 다른 종교처럼 뭔가를 인간이 노력해서 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할수없고 외부의 다른 짐승의 피로 구원을 받을수있도록 설계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준비한 양은 그순간의 죄를 대속하는 일시적 제물이지만 거룩한 하나님이 준비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는 영원한 대속물이 되어 그를 믿는자마다 영원한 죄를 해결받는 제물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이 예수를 바라보며 그분의 죽으심과 죄사함을 깨닫고 그 은혜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이 구원의 은혜는 기본으로 생각하며, 그외에 병고침, 문제해결, 삶의 여러 도움을 더 크게 바라보려고 합니다. 마치 좋은 차를 구입한 후에 그 차에 감사하기 보다 차의 기본옵션을 비교하며 불평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가 이루신 죄사함의 구원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땅의 약 80-100년의 크고작은 문제가 아니라 영원의 축복입니다. 비교불가입니다. 가령 로또를 맞았습니다. 근데 집에 청구된 유틸리티가 비싸게 나왔다고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가 이루신 죄사함과 구원의 깊이를 다시 깨닫고 오늘도 우리가 올려들려야 할 제목은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온전한 감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30절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요한은 신비한 말을 합니다. 예수가 내 다음으로 오셨는데 나보다 먼저 계셨던 분입니다. 실제로 요한이 조금 먼저 태어났고, 먼저 사역을 시작했고, 예수보다 더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보다 더 먼저계셨고, 먼저 사역을 시작하셨고, 더 크신분이란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40절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 자신도 이분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안뒤에는 자신의 인생목적이 이분을 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인생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먹고 마시고 돈을 벌며 사시나요? 이전에는 나를 위해 사셨다면 예수를 안뒤에는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분이 먼저오셨고,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며 이 생명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이걸 말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함입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결론을 말하는데 33절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게 하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요한은 성령의 싸인인 비둘기로 예수가 성령의 세례를 주는 메시야임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데 이것은 죄를 깨끗하게 하는 상징적 세래모니라면 예수가 주는 성령의 세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진짜로 해결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수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는 물세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주는 성령의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에 집중하게 하는게 아니라 예수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 아이가 유스에서 전도하기 위해 식스플레그를 가는데 친구를 초청했답니다. 그 아이는 자기랑 친하고, 식스플래그 티켓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날 시간이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럼 친구가 교회 다니니?” 안타깝게도 그건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못 물어보고 친구랑 놀러갈 것만 물어본 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가 주는 물세례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세례요한은 “예수가 주는 성령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우리가 예수를 바라봐야 하는 3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그분안에만 죄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분을 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는 물세례지만 그분이 진짜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니라 성령을 전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