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특새(일어나 함께가자)1 아가서1:1-6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

2025.09.30 09:1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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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특새(일어나 함께가자)1 아가서1:1- 6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 288/204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1절에 등장하는” 아가”란쉬르 하 쉬림”, “Song of song”, “노래중의 노래”란 뜻으로 솔로몬이 쓴 노래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사실 아가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이란 말은 한번도 나오지 않고, 오직 솔로몬과 술람미란 여인간의 일어나는 남녀간의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왜 이런책이 성경에 포함됬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66권은 흠이없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때, 아가서에 등장하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성경 전체의 주제인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이번 한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 힘차게 가정과 삶을 변화 시켜가길 기도합니다.

첫째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하려면 “아름다운 만남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국올때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그사람의 직업이 결정된다.” 가령 세탁소하는 분이 마중나오면 세탁소를 하게되고, 식당을 하는 분이면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만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몰래 자녀의 SNS에 들어가 자녀의 친구들을 뒷조사 하는 분도 봤습니다. 왜냐? 자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강준민목사님이 30대 초반에 좋은 멘토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간 사람이 하용조 목사님이었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이동원, 옥한흠, 홍정길목사님을 만나면서 목회의 패러다임이 바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볼때, 우리 인생을 가장 가치있게 만들려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지혜일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네 주님입니다. 인생에 주님을 가장 간절히 원해야 할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술람미 여인이 이걸 표현합니다.  

2절 (여자) 나에게 입맞춰 주세요, 숨막힐 듯한 임의 입술로. 임의 사랑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녀는 솔로몬 왕을 향해 간절한 입맞춤을 구합니다. 왜냐면 포도주보다 달콤했던 사랑의 뜨거운 추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만남은 있을 수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왜냐? 당시 솔로몬에게는 수없는 아내와 첩이 있었고, 왕중의 왕이었으며, 그는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술람미 여인은 어느 시골 포도주밭의 일꾼중에 보잘것 없는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이 만난다는 것은 거리적으로, 신분적으로 있을수 없는 기적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근데 어느날 솔로몬왕이 시골 포도원을 거닐다가 한 순간 우연히 술람미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 뜨거운 만남, 사랑의 입맞춤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나온 모든 분들에게 이 “사랑의 간구”가 있길 바랍니다. “주님이 없으면 안될것 같은 이 간절함의 기도”가 다시 회복되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는 몸이 너무 힘들어요, 자녀와 배우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재정과 사람때문에 지쳤어요. 주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 문제와 사람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었거나, 마음이 다른 곳에 묶여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진짜 사랑은 장벽을 만날때 더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끔 잘못된 사람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럼 부모도 막고, 주변 친구들도 막죠, 그럼 더 불타서 영화속 주인공이 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런 청년은 어떻게 막습니까? 그냥 놔두면 꺼집니다. 오히려 방해하면 더 뜨거워집니다. 이게 사랑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문제와 미움과 걱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식은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회복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 자녀에게도 배우자에게도 시작되야 합니다.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과의 만남이 시작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배우자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만남이 시작되게 해주십시오 술람미 여인처럼 구하는 이 새벽이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 아름다운 사랑이 시작되려면 “아름다운 향기가 나야 합니다.”

술람이 여인은 두번째로 솔로몬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3절 임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사람들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그녀는 솔로몬에게 느껴졌던 기름의 향기를 기억했습니다. 특히 쏟아지는 향기름이라는 것은 당시 귀족들은 향내가 나는 기름을 뿌렸는데 그 기름이 깨어져 쏟아질때 더 크게 진동하듯 솔로몬의 향기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솔로몬은 향기만 아니라 그 지혜와 유명세가 전세계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를 경험한 사람도 그 지혜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보게 됬습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나온 모든 성도들에게 이 예수의 향기가 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근데 우린 부족해서 스스로 이런 향기가 안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향기가 나는 사람과 가까워지면 됩니다. 향기는 주변 사람에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저는 중학교 시절 욕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함께 놀던 친구들이 전부 욕쟁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고등학교 가면서 욕을 안하게 됬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삶에 향기가 나려면 향기나는 사람을 찾아다니면 되겠죠,. 근데 문제는 내가 냄새를 못맡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냄새를 잘 못맡습니다. 어느날은 심방중에 어느 성도가 저에게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LA어느 지역에 심방을 다녀왔는데 그곳에 담배냄새가 뭍어온 것이었습니다. 냄새를 못맡으면 이런 잘못된 말투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모르고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3:6 보면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다”고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냄새 못맡는 양이라서 아무곳이나 들어가사는 존재란거죠. 그러니 지금 내 삶에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누구에게 맡겼다고 하죠? 예수님께 맡겼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방향제입니다. 아무리 지독한 냄새가 나도 방향제를 뿌리면 싹 날아가듯 예수님의 향기가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다. 우리는 자녀와 배우자 가정의 냄새를 바꿀 수 없습니다. 직장과 학교의 냄새도 못바꿉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곳에 예수의 향기를 뿌려야 합니다. 목사님 저는 전혀 그런 향기가 안나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자꾸 말씀을 보고 배우며, 기도하다보면 저절로 그분의 냄새가 나에게 묻어납니다. 그러다보면 집안에 향기가 달라집니다. 바라기는 이번 가을 특새 이후로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셋째 아름다운 사랑이 시작되려면 “아름다운 희생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4절을 보겠습니다. 4절 나를 데려가 주세요, 어서요. 임금님, 나를 데려가세요, 임의 침실로. (친구들) 우리는 임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포도주보다 더 진한 임의 사랑을 기리렵니다. 아가씨라면 누구나 임을 사랑할 것입니다. 술람이 여인은 왕의 가장 중심부인 침실로 이끌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불가능한 소원입니다. 왜냐면 왕의 침실은 수많은 호위병과 병사들이 지키고 있기에 절대로 왕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들어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술람미여인은 그게 되는것입니다. 거기다가 5절을 보십시오.

5절 여자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내가 검어서 예쁘단다. 게달의 장막 같고 솔로몬의 휘장 같다는구나.

그녀는 검은 색 피부의 여자였고, 게달의 장막이란 당시 중동지역에 검고 두꺼운 텐트재질을 말합니다. 그런 거친피부의 여자란 의미입니다. 왜 이렇게 됬는가? 6절 내가 검다고, 내가 햇볕에 그을렸다고, 나를 깔보지 말아라. 오빠들 성화에 못 이겨서, 나의 포도원은 버려 둔 채, 오빠들의 포도원들을 돌보느라고 이렇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하루 온종일 때약볕에서 일해야 하는 포도원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자기일을 하지도 못하고 배다른 오빠들 주변사람들에게 치여서 사는 불쌍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술람이여인처럼 세상에 치여서 자기 삶도 제대로 못가누는 검디 검은 인생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도 예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생이었습니다. 근데 왕중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휘장을 가르고 자신의 가장 깊은 지성소까지 열어주셔서 우리를 만나주신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기적중의 기적이요 우연중의 우연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철저히 의도하여 가장 높은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낮아졌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의도적으로 받으셨고, 십자가에 의도적으로 죽었습니다. 왜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희생이 발생해야 합니다. 희생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윤동주시인이 십자가의 예수는 가장 행복했다고 표현했죠. 왜죠, 자신이 목숨바쳐 희생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은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정에도 직장과 일터에도 신앙에도 이 희생의 크기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 우리의 사랑이 더 크게 불타는 한주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되도록 그리고 주님의 향기가 우리 삶에 진동하도록 그리고 이걸 위한 희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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