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세상의 소망 25  전도서 10:5-11 인생의 진짜 실세를 알라

2025.09.10 05:1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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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세상의 소망 25  전도서 10:5-11  진짜 실세를 알라    찬370/ 통455 주안에 있는 자에게

인생에는 실세가 있습니다. 실세를 알때 인생이 편해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것만 의지하지만, 지혜로운자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보는 능력, 통찰력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10장에서 어리석은자를 계속 설명하는데 특히 세상의 어리석은 주관자에 대한 우매함을 설명합니다. 볼까요?

5 내가 세상에서 본 잘못된 일 또 하나는, 역시 통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크나큰 허물이다.

계속해서 어리석음을 설명하면서 “통치자의 허물”을 말합니다. 여기서 통치자는 4절에 등장하는 통지자(하나님)와 달리 세상의 리더, 또는 권력을 가진 주권자를 말합니다. 이런 세상주권자에게는 큰 허물이 있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6절의 말씀입니다. .  

6 어리석은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존귀한 사람을 낮은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주권자는 어리석은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존귀한 사람을 낮은 자리에 앉힌답니다. 개역개정는 “존귀한 자”를 부자로 해석했는데.10장에서 부자란 표현은 단순히 돈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와 존귀가 부한자를 말합니다. 즉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을 높은자리에 쓰지 않고, 미련하고 지혜없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한마디로 뒤죽박죽 질서가 없는 정의와 공의,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통하지 않는 불합리한 세상이 될것입니다. 그 불합리한 세상의 단적인 모습이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내가 보니, 종은 말을 타고, 상전은 종처럼 걸어다니는 일이 있더라.

말도 안되는 장면입니다. 멸시받고 열심히 일해야 할 종이 존중받고 존중받으며 지도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종처럼 일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유토피아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며 여러 정치제도를 시도해 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시장 경제를 유도하는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단점은 부한자는 계속부해지고 가난한자는 계속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발생된 것이 시장경제를 노동자와 국가가 통제하는 공산주의입니다. 모두가 평등해지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가 게을러져서 시장경제가 망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현재 공산주의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다음으로 등장한것이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체제의 실패의 이유를 노동자가 통치했기 때문으로 알고 이번에는 막강한 엘리트그룹이 현명하게 시장경제와 국가를 통제하는 체제입니다. 다행히 공산주의처럼 국가전체가 망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무기력과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3가지 인간이 만든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민주주의가 좋다? 사회주의가 좋다? 아닙니다. 인간이 만드는 어떤 세상도 불완전하고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가장 이상적인 국가 정치제도는 공산주의입니다. 왜냐면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공평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제도는 사실 성경의 사도행전 2:43-48절에 등장하는 초대교회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본따서 만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절대로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우리는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죠?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전도자의 말처럼 내가 주권자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가정 가계 학교가 될때 비로서 온전한 공동체와 온전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양하게 설명하는데 8절을 봅시다.

8 구덩이를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수가 있고, 담을 허무는 자는 에게 물릴 수가 있다.

구덩이를 판다는 것은 남을 빠지게 하는 함정을 판다는 것으로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만드는 잔꾀와 노력은 항상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에스더서의 하만이 그렇습니다. 에스더와 이스라엘을 함정에 빠뜨릴 기막힌 잔꾀를 계획했지만 결국 그 함정에 자기가 빠져서 죽게 되죠, 어리석은자의 통치와 다스람은 이와같은 결말을 예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을 허문다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더 크게 확장하기 위해 경계선을 머리써서 넓혀가는걸 말합니다. 이런 자도 결국 뱀에 물리게 되는 결말을 맞게 될거란 것입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비유를 반복합니다. 9절을 봅시다.

9 돌을 떠내는 자는 돌에 다칠 수가 있고, 나무를 패는 자는 나무에 다칠 수가 있다.

돌은 떠내는자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땅의 경게를 표시하는 지계석을 옮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노력에 망하고, 나무를 패는 자란 누군가에게 피해를 가하며 자신의 이익을 갖으려는 자를 비유합니다. 이들또한 그 이익이 오히려 자신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결국 8절의 연장선으로 악한 지혜로 이익을 갖으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꾀에 넘어간다는 걸 다시 한번 0강조합니다. 왜 전도자는 이것을 강조할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우매한자들이 통치하고 있는 어리석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하나는 선한 지혜자가 바보취급을 받거나 늘 피해를 입기 때문에 낙심하며 “나도 저렇게 악하게 살아야 겠구나.”나도 저렇게 속여서 돈을 벌어야 겠다”하며 하나님 없는 어리석은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죠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자들이 통치하는것 같지만 그 뒤에 하나님이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장 1절에서도 계속 불의한 왕 미련한 왕에게도 순종하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자들이 통치하지 않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에 합당한 벌이 있기에 우린 하나님을 보며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깨달은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10절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10 도끼가 무딘데도 그 날을 갈지 않고 쓰면, 힘이 더 든다. 그러나 지혜는 사람을 성공하도록 돕는다

도끼가 무뎌져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안되는걸 계속 힘써봤자 열매없이 힘만 빠지는 인생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니님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자의 모습이란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가질때 비로서 그사람의 인생에 성공 SUCCESS가 된다는 것입니다.  

11 을 부리지도 못하고 에게 물리면, 을 부린다는 그 사람은 쓸 데가 없다.

11절은 개역개정에 방중을 베풀기전에 라고 해석했는데 이것은 당시 흔하던 주문을 통해 동물을 조종하는것으로 흔히 뱀을 조종하는 술법사를 말했습니다. 아무리 지혜롭게 연습하고 숙련해도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고, 완전한 지혜를 제공하는 분이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 일터, 학교속에서 억울한일 힘든 일이 많으시죠? 때론 뜻대로 계획대로 안되서 미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왜죠? 이세상은 그들이 통치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실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첫째 가정과 민족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둘째는 불의한 자는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셋째는 반드시 선한 지혜가 승리합니다.

오늘도 이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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