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세상의 소망 21 전도서 8:14-17 모순된 세상에서 중심잡기
2025.09.02 07:11
예수인교회
허무한 세상의 소망 21 전도서 8:14-17 모순된 세상에서 중심잡기 찬510/276 하나님의 진리등대
옛날에는 인과응보, “사람이 행한대로 보응을 받는다”지만 요즘은 그것과 상관없이 이해가 안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더욱 허망합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전도자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설명합니다.
14절 이 세상에서 헛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이것을 보고, 나 어찌 헛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허무한 일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고 의인이 받아야할 보상을 악인이 받은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모순덩어리의 세상을 말합니다. 실제로 힘있고 돈많은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좋은 변호사를 사서 오히려 역전되고, 돈없는 사람은 잘못한게 없어도 억울하게 감옥에 갑니다. 사회적 구조도 모순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돈버는 사람은 매달 렌트비에 허덕입니다. 그러나 머리좋고 돈많은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탈세와 비리로 더 잘삽니다. 거기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냥 있어도 부자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발버둥을 쳐도 가난을 물려받습니다. 불공평하고 이해 할 수 없는 모순된 세상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이런 억울하고 이해할수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럴때마다 우리는 참 속상하고 낙심되며 지칠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15절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생을 즐기며 먹고 마시라”고 말하는데 얼핏보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며 그냥 있는것에 즐기며 방탕히 사는게 낫다고 말하는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즐거움, 즉 먹고 마시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즐기라는 것입니다. 가령 신문을 보면 경제가 어렵고 늘 안좋은 소식 투성이지만, 오늘 먹을 음식에 감사하고, 출근할 직장과 좋은 차와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게 즐기는 것이 얼마나 좋냐는 것입니다. 오늘도 억울하고 힘든 상황이 있겠지만 그런것에 마음이 소비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것들을 헤아리며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축복의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16절
16절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을 때에, 그리고 땅 위에서 밤낮 쉬지도 않고 수고하는 사람의 수고를 살펴보았을 때에,
전도자는 두가지로 이런 세상의 부조리와 억울함 모순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최고의 지식과 학문을 들춰보며 이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수고하며 이런 한계를 넘어보기 위해 노력도 해봤다는 것입니다. 근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17절입니다.
17절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혹 지혜 있는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정말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전도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보면서 깨달은게 있는데 그것은 누구도 이 세상에서 이뤄지는 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어느분이 그런 말을 합니다. “왜 세상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을까요? 왜 매번 불의한 대통령이 통치를 할까요? 왜 주변에 착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까요? 왜 정직하게 일한 사람은 짤리고, 몰래 게으름 피우고 일도 잘 않하는 사람은 진급할까요?” 이해 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인데 이분의 결론은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집사님의 배우자 한명도 이해를 잘 못하면서 어떻게 저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하십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말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친한 친구, 배우자, 심지어 내배에서 태어난 자식 하나도 이해를 못하면서 어떻게 그크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그것도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 목사님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이해가 되서 믿는게 아니라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이해해서 순종 하려고 하면 더 순종이 어렵습니다. 그냥 그분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순종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이것은 신뢰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나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남편이 예쁜 여비서와 출장을 가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배우자를 잘 믿지 못한다면 남편이 못생긴 여자를 처다만 봐도 흔들릴 것입니다. 먼저 믿음의 관계가 굳건히 서 있다면 어떤 모순된 상황을 마주해도 “다 이유가 있겠지”, 뭔가 좋은 걸 주실거야, 곧 좋아지겠지,” 이런 믿음의 고백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모순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첫째 모순보다 주신것을 감사하며 즐기십시오.
오늘 없는것, 억울한것, 부족한것만 보지 말고 주신것, 있는것을 헤아리며 감사로 충만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음면 이해됩니다.
이번한주도 이해 할 수 없는 상황과 사람 때문에 낙심되고 억울하거나 이것때문에 하나님이 원망스러운분이 있다면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믿고 감사하며 주님이 주신것으로 행복한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