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인생의 소망 16 전6:11-12 하나님을 아는자의 특권
2025.08.26 07:04
예수인교회
허무한 인생의 소망 16 전6:11-12 하나님을 아는자의 특권 찬435/492 나의 영원하신 기업
가끔 캘리포니아 LA에 살면서 이곳이 관광지라는 것을 잊고 살때가 많습니다. 출근할때 아무생각없이 운전하면 꽉 막힌 프리웨이가 지겹고 힘든 출근길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곳이 전세계에서 오고싶은 최고의 관광지 LA라고 생각하면 꽉막힌 도로나 지저분한 거리마져 볼거리, 낭만이 느껴지는 관광지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란 걸 모르고 살아갈때와 같습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힘들면 힘들고, 우울하면 그것에 갇혀 비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오늘도 직장, 가정, 자녀와 배우자의 인생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똑같은 일상이 어드밴처가 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도응답과 감동의 날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짧은 두절에서 전도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두가지 특권을 잘 표현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볼수있는 특권있습니다.”
11절 말이 많으면 빈 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이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
11절에서 “말이 많으면 빈말이 많아진다”고 시작합니다. 이걸 단순히 해석하면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헛된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일”의 원어는 “데바르”인데 이것은 “다바르”의 말씀이란 단어에서 파생됬습니다. 그래서 일보다는 말씀쪽이 좀더 분명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10절과 연결해서 해석하면,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지혜와 방법으로 인생을 가치 있다고 말해도 공허한 인생을 변명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안다니는 사람에게 “인생의 기쁨이나 행복이 무엇입니까?” 질문하면 젊은 분들은 좋은학교 들어가고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만나는 거겠죠. 부모세대는 자식이요, 가난한 분들은 돈많이 벌어서 편하게 지내는 거요, 나이든 분들은 남은 여생 건강하게 지내는 거요? 등등의 각자의 상황에 맞게 원하는 것과 인생에 행복한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예수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것들이 소소한 즐거움과 낙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분은 “난 이런것들도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런 기본적인 노력이나 수고 또는 세상의 즐거움이 무조건 허무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능자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축복에 비교할때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우리 5째 하엘이가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면 친구와 함께 늘 골을 제일 많이 넣는답니다. 자기 반에서 비교해보면 하엘이가 두번째로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를 갖다 놓고 비교하면 허무하겠죠.
전도자는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며 나름 낙이라고 붙잡고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무한함 그리고 동행하심을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에 대한 허무과 공허를 뼈져리게 알거란 의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만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문제인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성도 여러분, 날마다 무시로 수시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세상을 깨닫는 특권입니다.
12절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여기서 그림자란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며, 변화무쌍하고 어둡고 공허한 덧없는 삶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판단 할수있겠냐는 것입니다. 개역개정에는 “그후에”라고 표현했지만 새번역은 정확하게 “죽음이후에”로 우리가 죽어봐야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무지하고 한계가 있어서 그순간과 상황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가령 젊음의 소중함, 건강의 소중함, 부모의 소중함, 현재의 소중함등 우린 시간이 지난후에 깨닫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야 알수있는 인생의 허무를 누가 알려줄수있냐? 이말은 인간은 죽었다 깨도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이란 점입니다. 이것을 전도자가 깨달았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이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초월적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라는 걸 말해줍니다.
중국의 노자는 우주 만물의 오묘한 조와화 운행을 보고 이 우주 만물을 만든 어떤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까닭에 그는 그 존재를 알수아가 없고 무궁해서 오히려 무(없을 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가 어떤 분이며 어떤 능력과 성품을 가지셨으며 어떤 뜻과 계획을 가지신 분인지는 도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는 이것을 어떤 노력이나 공부 또는 수많은 날을 경험하거나 어떤 초능력을 통해서 깨달은게 아니라 믿음이라는 신비한 하나님의 선물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신앙세계는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매우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떤면에서 보면 가장 단순하고 쉽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모든것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며 이세상 뿐만아니라 온우주의 만물을 이해하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허무한 해아래에서 의미있게 살아가는 법은
첫째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을 의식할때 지금 무엇이 중요한 덜중요한지, 무엇이 필요하고 안필요한지 분별하여 세월을 아끼게 될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