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인생의 소망 1 전1:1-11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2025.07.23 05:19
예수인교회
허무한 인생의 소망 1 전1:1-11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찬384/434 나의 갈길 다가도록
전도서는 구약시대에 솔로몬이 썼는데 솔로몬이란 말이 한마디도 안나옵니다. 근데 어떻게 솔로몬이 써는지 알까요? 첫째는 문체입니다. 지혜서의 대부분이 솔로몬이 썼는데 그 문체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소개할때 1절과 12절에 예루살렘의 왕이란 표현했는데 당시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표기하는데 통일 왕국시대의 예루살렘의 왕은 오직 다윗과 솔로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것은 솔로몬이야 말로 인간의 모든 지혜, 명예 권력, 부 성적 육적 지적 쾌락 등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 사람이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니 얼마나 귀한 말씀일까요?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1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이다
성경을 보면 첫구절부터 궂이 저자를 밝히는 책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신자, 읽는자를 밝힙니다. 그럼에도 저자를 먼저 밝히는 이유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어떤 사람이었죠? 하나는 다윗의 아들이랍니다. 이것은 흔히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는 의미도 있지만 그 반대이기도합니다. 다윗의 모든걸 물려받았지만 모든걸 헛되게 사용한 사람, 또 하나는 왕이란 표현입니다. 모든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전도자라고 소개합니다. 히브리 원어는 코헬레트입니다. 이것은 지금말로 하면 연구자, 또는 설교자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절 후반에 전도자의 말이라고 표현했지만 원어는 선지서(느헤미야, 예레미야, 아모스)처럼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즉 지금부터 인생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던 솔로몬 왕이 이제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2절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그 전도자가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다. 하벨 하발림 여기서 “헤벨”이란 헛되다라는 말로 두번 반복했습니다. 이것은 공기나 증기같이 실체가 없는 허무함을 말하는데 히브리어는 강조나 최상급이 없어서 여러번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가령 “진실로 진실로, 하늘들의 하늘, 노래중의 노래” 등 3번 반복한다는 것은 헛된것 중에 최고로 헛된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전도서 전체의 주제면서 신구약에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가령 바울은 롬8:18-20에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라는 표현에서 사람이 허무한곳(헤벨)에 굴복되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부터 인생에서 가장 헛된 것들을 3절부터 소개합니다
3절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첫번째 인간의 모든 수고가 무슨 보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근데 세상에서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해아래에서라고 표현했는데 즉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수고가 무슨 보람이 있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람이 개역개정에는 유익으로 해석했는데 원어는 “남아있는”이란 의미로 즉 우리는 뭔가 세우기 위해 수고하지만 실제는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절입니다.
4절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사람의 세대는 보통 40년에서 길면 100년인데 그사이에 다른 세대로 바뀐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공들이고 노력해봐야 다음세대가 바꾸기 때문에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는 기업이나 기관도 50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쇠퇴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워크맨, 소니, 대우, 노키아, 코닥, , 쌍용 jp모건등, 대부분 사라진게 훨씬 많을것입니다. 언젠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과 몇시간동안 아름다운 사람을 모래로 만든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옆에서 사진찍고 한참놀았는데, 그 이후로 바닷가를 갈때 다시는 안 만듭니다. 왜냐면 바닷물이 들어오니까 금새 망가지더라구요. 이처럼 사람은 영원한걸 사모하고 가치를 두는데, 왜 그렇게 유한한걸 위해 목숨걸고 애지중지하며 울고 웃고 분노하며 사냐는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부터 전도자는 여기서 이상한 메세지를 시작합니다. 인간의 모든것은 그처럼 유한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만든 자연만물은 언제나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볼까요? 5절입니다.
5절 해는 여전히 뜨고, 또 여전히 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떠오른다
먼저 해를 비유합니다. 해가 여전히 변함없이 뜨는데 재미있게 진후에 다시 제자리에서 떠오른답니다. 이것은 자연의 반복과 변함없는 무던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6절에 .
6절 바람은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
바람은 항상 흔적없는 움직임을 말할때 사용되는데 남쪽과 북쪽이란 아까 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결국 해는 규칙적이고 바람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둘다 공통적으로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또한가지 7절
7절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강물은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다시 흘러내린다.
솔로몬은 자연의 3번째 비유로 물의 순환을 말하는데 물은 한쪽으로 흐르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흘러가는데 희한하게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 수고하고 일해도 넘치지 않고 균형적으로 흘러가며 반복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즉 이3가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만물을 통해 알수있는것은 8절입니다.
8절 만물이 다 지쳐 있음을 사람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자연만물은 이처럼 다 지쳐있다는 것, 개역개정은 피곤하다고 해석했는데 이것은 앞절에 말한 “인간의 수고”와 대조적인 “자연의 수고”를 말합니다. 자연의 수고는 인간의 수고와 다르게 사람이 말로 설명할수없는 균형과 변화, 반복, 영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이것을 눈으로 봐도 만족이 안되고, 귀로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9절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9절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모든 자연만물이 다양하고 변화무쌍 하지만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새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개역개정에 “해아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은 이같은 영속적인 수고와 노력을 해도 영원하고 불변한데 오직 인간만이 무가치하고 어리석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이걸 한번 더 강조합니다.
10절 ‘보아라, 이것이 바로 새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것, 우리보다 앞서 있던 것이다.
우리가 새것이라고 말하는 그것도 결국은 과거에 있었던것이라고 반문합니다. 최근 동성애가 성행하죠? 사실 성경속에 타락하는 도시마다 동성애가 성행했습니다. 인간이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려고 하고, 유전자를 바꾸고, 생명을 연장하려고 수없이 노력합니다. 이모든것이 창조자에 대해 대항하려했던 바벨탑사건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원역사”라고 부릅니다. Circle of history 역사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어떻죠? 11절입니다.
11절 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 세대도 그 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세대도 그 다음세대로 잊혀지는 세대가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미국살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자녀를 위해 일하고 가르치고 시간을 보냅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조금 느슨해지지만, 근데 그런 자녀가 우리의 생각과 신앙을 잘 따를까요? 잘따른다고 해도 갈수록 제대로 전수못하는 가정이 허다합니다. 언어도 문화도 나중에는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 상관없는 세대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상하기 싫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아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인생의 모든걸 경험한 솔로몬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것입니까?
첫째 “가치있는 걸 위해 수고하라”입니다.
인생에 가치있는 것은 대부분 오래 가는 것들입니다. 무가치한걸로 낙심하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둘째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사십시오.
해아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해위에까지 가져갈것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셋째 다음세대를 잘 세우십시오.
다음세대는 잊혀집니다. 그들에게 신앙과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