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6. 사 42: 18-25,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백성
2024.12.04 08:20
예수인교회
사 42: 18-25,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백성, 찬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색맹’이라는 하는데, ‘청맹’은 외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서 마치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영적인 청맹’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문 ‘18절,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귀가 먹은 자들아, 들어라. 너희 눈이 먼 자들아, 환하게 보아라. 누가 눈이 먼 자냐? 나의 종이 아니냐! 누가 귀가 먹은 자냐? 내가 보낸 나의 사자가 아니냐!” 누가 눈이 먼 자냐? 주님과 언약을 맺은 자가 아니냐! 누가 눈이 먼 자냐? 주님의 종이 아니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사자로 보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귀가 막힌 지, 눈이 먼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니까, 또 성전은 없어졌지만 제사와 예배는 드리니까, 자신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있고, 깨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그들의 삶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예배와 말씀을 통해 자신들은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의 종, 내가 보낸 나의 사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과 ‘사자’는 ‘자신에게 주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의 주권은 ‘주인’에게 있고, ‘사자’의 주권은 사자를 보낸 ‘왕’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우리가 내 삶의 주인 되고, 우리가 왕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 ‘21절, 22절’을 보면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탄식합니다.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율법과 교훈을 높이셨고, 백성이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지금 그의 백성은 약탈과 노략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구덩이 속에 갇혀 있고,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이 약탈을 당하였으나, 구하여 주는 자가 없고, 노략을 당하였으나, 노략자들에게 ‘돌려주어라’하고 말해 주는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뻐하며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그들은 그 축복마저도 다 도둑맞았습니다. 가진 것을 약탈과 노략을 당하고, 이제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감옥에 갇히고, 이방의 노예와 종으로 전략했습니다. 억울함을 당해도, 노략을 당해도 “그들에게 돌려주어라”고 말할 수 있는 도움조차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던 하나님의 백성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24절 상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곱이 노략을 당하게 버려 둔 이가 누구였으며, 이스라엘을 약탈자에게 넘겨 준 이가 누구였느냐? 바로 주님이 아니시냐?”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이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무감각, 영적 장애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의 손에, 고난의 손에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본문 ‘2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불타는 진노와 참혹한 전화를, 이스라엘 위에 쏟으셨다. 사방에서 불이 야곱을 덮었으나,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고, 불이 그를 태웠으나,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믿음의 백성에게 매우 강하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전쟁의 고난을 당해도, 그 참혹한 상황이 사방에 덮쳐도, 그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알아도 그 삶을 멈추고 고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삶을 바꾸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영적 장애 가운데 살면서, 단지 지금 내게 있는 고난과 환란만 바라보며 이 문제만이 해결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그들을 태워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데도 영적으로 무너져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깨달아도 그 삶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 하반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다. 백성이 주님의 길로 걸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의 법을 순종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로 가지 않고, 세상의 것을 보며 세상의 길을 걷고, 하나님의 법, 즉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호세아서 6장 1절에서 3절’에 이렇게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멸망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2장’에는 두 종류의 ‘눈 먼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7절’에 보면 “네가 눈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 먼 사람”은 ‘자신이 영적으로 눈 먼 사람임을 깨달은 백성’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눈 먼 자’가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자를 해방시키시며, 어두운 영창에서 자유케 하시는 백성은 자신이 영적으로 눈 먼 자임을 깨닫고, 이제는 그 삶을 여호와께로 돌이키고자 몸부림치는 백성인 것입니다. 그 삶에서 세상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주님께서 보여주실 때 바로 볼 수 있는 영적 시각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주님께서 들려주실 때에 들을 수 있는 영적 청각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기를 원하실 때에 지체하지 않고 응답할 수 있도록 영적 민감성을 주시옵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