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부활(주일 묵상/요20:19-23)

2016.03.29 10:4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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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 부활절을 얼마나 많이 맞이하고 경험해 보았을까요? 대부분의 대답은 “셀수없이” 입니다. 원래 기독교의 주일예배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해 안식후 첫날(요20:19)에 모여 말씀과 기도와 성만찬 하던 초기기독교 공동체의 예배가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AD 322년 밀라노칙령 이후 AD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정식 주일의 개념과 지금의 부활절 절기를 결정하여 지키게 된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때 매 사순절 기간의 부활절만이 아니라 매 주일이 부활절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중심이 되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때 부터인가 절기와 행사로 빠지면서 요즘 현대교회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 매 주일예배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아무리 주님이 부활했다고 외쳐도 그것은 교회 행사로만 마칠뿐 우리 인생속에 부활의 주님이 주는 의미와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보는 본문에 등장하는 안식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모인 열제자(도마제외)의 모임이 그러했습니다. 요20:19 이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 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의 부활은 그들이 과거에도 들었었고 지금 막달라 마리아가 전한 소식에도 들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고(눅24:22) 말합니다. 거기다 이 본문을 원어로보면 유대인이 두려워 집의 모든 문들을 꼭꼭 걸어 잠궜다는 그들의 심리적 상태까지 포함한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잡히면 죽을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긴 신앙, 두려움을 이긴 신앙인데 그들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뿐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서 부활의 메세지인 “너희에게 평강(에이레네)이 있을찌어다.” 여기서 평강은 이 본문에서 3번 강조하는것으로 단순한 샬롬의 인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화평의 관계로 회복이 되어 모든 두려움이 제거 되었다는 짧은 부활의 설교인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태도는 여전히 두려움의 상태였다고 말합니다.(눅24:37)

이것은 매 주일의 예수가 죽은자가 아니라 부활했다고 선포해도 우리삶속에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모습이 없는 것과 동일합니다. 인간에게 죽음을 이겼다는 표현은 더이상 인간을 두렵게 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자녀의 진로와, 질병의 문제와 삶의 크고 작은 문제 앞에 항상 조마조마 하는 것은 어떤 괴리가 있는 걸까요?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중요한 액션을 보여주는데 요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박혔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직접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었더니 그제야 예수가 보이더랍니다. 한마디로 고난과 고통을 이겨야 한다고 수십번 설명해도 잘 와닿지 않는 우리가 이지선 자매의 화상입은 얼굴과 입술을 통해 몸으로 들으면 와닿는 이치인것입니다.

2000년전 그 십자가의 흔적이 오늘 우리에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늘 우리삶속에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운 문제들을 주님이 십자가에 못에 박히듯, 버림받듯이 나도 감내하며 몸이 죽어져 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치 예수의 십자가가 내 몸으로 경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속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깊은 신앙의 고백을 경험한 사람이 비로소 부활의 능력도 경험할수있다는 말입니다.

부활은 죽어진 증거가 없으면 이해가 안되는 기적입니다. 매주일의 예배를 드릴때 마다 먼저는 십자가앞에 철저한 죄인됨과 자기부인을 경험하며 부활의 주님을 만날때 비로서 두려움을 이기는 부활이 살아지는 예수인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이번주도 부활을 삽시다.

 

주일의 묵상
박정환 목사(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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